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다함교회 주간 묵상집

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

열왕기상 14:1-17

이 묵상집은 주일 설교 「왕들의 이야기(18) 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을 한 주간 이어서 묵상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본문을 두 번 읽고, 묵상 글을 읽은 뒤, 묵상 질문에 한두 문장으로 답을 적으십시오. 마지막에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고, 자신의 언어로 한 문장을 덧붙여 기도하십시오. 하루 15~20분이면 충분합니다.

기간6일 과정 (월~토)
소요 시간매일 15~20분
준비성경책, 필기구, 조용한 장소
순서말씀 → 묵상 → 질문 → 기도
한 주간 암송구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6일 묵상 한눈에 보기

일차본문 및 제목한 주간 묵상 되새김
Day 1 · 월흔들려 봐야 아는 것 (열왕기상 14:1)월요일 — 위기가 와서 흔들려 봐야 우리 신앙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드러납니다.
Day 2 · 화변장하고 나아가는 사람 (열왕기상 14:2-3)화요일 — 우상은 우리의 욕망을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죽음을 감당해 주지는 못합니다.
Day 3 · 수눈이 어두워도 보는 사람 (열왕기상 14:4-6)수요일 — 하나님 앞에서 변장은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꾸미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Day 4 · 목심판보다 먼저 오는 은혜의 회상 (열왕기상 14:7-11)목요일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흠한 인생이 아니라 돌이키는 인생입니다.
Day 5 · 금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한 사람 (열왕기상 14:12-13)금요일 — 하나님은 무너지는 집을 쓸어 내실 때에도 당신을 향해 돌아서 있던 한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Day 6 · 토문지방 앞에서 (열왕기상 14:17; 출애굽기 12:22; 로마서 5:8)토요일 — 생명은 달려가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고, 우리의 반응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 반응의 원인입니다.
DAY 1월요일

흔들려 봐야 아는 것

열왕기상 14:1 · 오늘의 말씀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왕상 14:1)

배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아는 방법은 큰 파도가 한 번 치게 하는 것입니다.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갑판 위를 아무리 살펴도 잘 모르지만, 큰 파도가 치면 짐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그 배가 싣고 다닌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평온할 때의 신앙고백은 사실 큰 의미가 없고, 인생이 흔들릴 때 우리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과 우리 발이 향하는 방향이 우리 신앙의 실체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 왕이 인생 최악의 파도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사람이었고,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열 지파를 약속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운 나라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금송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 여로보암에게 아들이 병드는 파도가 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를 성경은 아주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성경이 아이의 이름을 굳이 밝혀 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아비야는 히브리어로 ‘아비야후’이고,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입니다. 금송아지를 세운 사람이 지을 이름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여로보암이 아직 본격적인 우상숭배로 넘어가기 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던 시절에 지은 이름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이름 자체가 여로보암이 한때 서 있던 자리를 증언하는 비석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라고 이름 붙인 그 아들이 지금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붙들고 본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첫째, 나는 위기의 순간에 어디로 가는 사람인가? 둘째, 하나님은 반응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묵상 질문

1

최근 내 인생에 닥친 ‘파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과 내 발이 향한 곳은 어디였습니까?

2

평온할 때의 내 신앙고백과 위기 때의 내 발걸음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평온할 때만이 아니라 흔들릴 때에도 제 입술과 제 발걸음이 주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위기가 와서야 겨우 주님을 찾는 저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2화요일

변장하고 나아가는 사람

열왕기상 14:2-3 · 오늘의 말씀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왕상 14:2)

여로보암은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이라고 온 국민에게 선포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병들었을 때 마땅히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자기가 세운 벧엘로 가서 자기가 임명한 제사장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가지 않고 실로로 갑니다. 자기가 세운 신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자기가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정체입니다. 우상은 평상시 우리의 욕망을 정당화해 주는 데는 아주 유능합니다. 그러나 정작 생사가 걸린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합니다. 여로보암은 벧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벧엘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용한 것과 믿은 것은 위기 앞에서 반드시 갈라집니다. 우상은 우리의 욕망을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죽음을 감당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위기 앞에서 자기가 진짜 무엇을 믿었는지 자기도 모르게 실토하게 됩니다.

더 아픈 대목은 왜 아내에게 변장을 시켰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비가 언약궤가 머물던 여호와의 옛 성소 실로의 선지자를 찾아갔다는 소문이 나면 자기가 세운 종교 체제 전체가 무너집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거짓말에 자기가 인질로 잡힌 것입니다. 또 하나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새 옷 열두 조각을 찢어 주며 열 지파를 주겠다고 선포했던 바로 그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여로보암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아히야를 볼 낯이 없는 것입니다.

이 변장이 남의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얼마나 자주 변장을 합니까? 주중에 살아온 모습은 옷장에 걸어 두고, 주일 아침에 단정한 얼굴 하나만 챙겨서 나옵니다. 하나님께 응답은 받고 싶은데, 정체는 들키기 싫은 것입니다. 그것이 변장한 예배입니다.

묵상 질문

1

내 삶에서 ‘평소의 의지처’와 ‘위기의 의지처’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는 ‘변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게 됩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주중에 살아온 모습을 감추고 단정한 얼굴만 들고 나오던 저의 변장을 벗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3수요일

눈이 어두워도 보는 사람

열왕기상 14:4-6 · 오늘의 말씀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왕상 14:4)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왕상 14:5)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왕상 14:6)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미리 말씀하십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들었으므로 물으러 올 것이니, 들어올 때 다른 사람인 체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히야는 육신의 눈이 어둡지만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기 때문에 다 봅니다. 여로보암은 두 눈이 멀쩡하지만 하나님과 끊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시력은 시신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여인의 발소리가 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히야가 부릅니다.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이 한마디에 그 여인의 변장이 다 벗겨졌습니다. 발소리 하나로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장은 딱 이 정도의 수명을 가집니다. 문지방을 넘는 순간까지입니다.

어느 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심방을 가면 그 집 냉장고 문을 안 열어 봐도 안다. 거실이 아니라 현관 신발장을 보면 그 집이 어떻게 사는지 다 보인다.” 우리는 거실만 치우고 하나님을 맞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관에서 이미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첫걸음은 잘 꾸미는 것이 아니라, 꾸미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묵상 질문

1

요즘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이고, 끊어져 있다고 느끼는 때는 언제입니까?

2

거실만 치우고 하나님을 맞이하려 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현관에서 이미 아시는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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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발소리만 들어도 저를 아시는 주님 앞에서 가리는 일을 그만두게 하옵소서. 잘 꾸미는 것이 아니라 꾸미기를 그만두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4목요일

심판보다 먼저 오는 은혜의 회상

열왕기상 14:7-11 · 오늘의 말씀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왕상 14:7)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왕상 14:8)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왕상 14:10)

7절부터 아히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참으로 준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회상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죄하시기 전에 먼저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다윗과 비교하십니다. 다윗이 죄가 없었습니까? 다윗은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윗을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은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흠한 인생이 아니라 돌이키는 인생입니다.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의 차이는 죄의 유무가 아니라 회개의 유무입니다.

10절의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험한 표현 중 하나입니다. 거름 더미를 쓸어 내듯 여로보암의 집을 쓸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여로보암의 죄가 개인의 죄로 끝나지 않고, 한 나라 전체를 우상으로 끌고 들어가는 구조의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죄는 결코 사적이지 않습니다. 지도자의 죄는 언제나 공적이고, 세대를 넘어 흐릅니다.

묵상 질문

1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내가 잊고 지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의 차이는 회개의 유무였습니다. 최근 내가 ‘돌이킨’ 경험, 혹은 돌이켜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3

내가 가정이나 일터, 공동체에서 맡은 자리의 영향력은 무엇이며,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정죄하시기 전에 먼저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무흠한 인생이 아니라 돌이키는 인생을 살게 하시고, 제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른 사람을 우상으로 이끄는 자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5금요일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한 사람

열왕기상 14:12-13 · 오늘의 말씀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왕상 14:13)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왕상 14:12)

한 집안 전체가 쓸려 나가는 심판 가운데, 하나님은 한 아이를 따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 아이에게 선한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십니다. 이 아이가 무슨 위대한 일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개혁을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업적을 다 세지 못하실 만큼 바쁜 분이 아니십니다. 우상 천지인 궁궐 안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한 소년의 마음 한 조각까지 정확하게 아시고, 그것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지는 집을 쓸어 내실 때에도, 그 집 안에서 당신을 향해 돌아서 있던 한 사람의 얼굴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12절의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는 언뜻 들으면 저주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이 아이는 앞으로 벌어질 여로보암 왕조의 참혹한 최후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온 이스라엘의 애도를 받으며 묘실에 장사됩니다. 여로보암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존엄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자비입니다. 우리가 “왜 하필 이 아이입니까” 하고 물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 아이를 그 모든 참극에서 건져 냈다”고 대답하고 계신 것입니다.

묵상 질문

1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지키고 있는 신앙의 자리, 작은 순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자비였던 일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업적을 다 세지 못하실 만큼 바쁘지 않으시고 제 작은 진심 하나도 기억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어둡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6토요일

문지방 앞에서

열왕기상 14:17; 출애굽기 12:22; 로마서 5:8 · 오늘의 말씀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은지라" (왕상 14:17)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출 12:22)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성경은 아이가 죽은 장소를 굳이 “문지방”이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어로 문지방은 ‘사프’입니다. 이 단어가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곳이 출애굽기 12장, 유월절 밤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담았던 ‘그릇’도 같은 모양의 단어 ‘사프’입니다(출 12:22). 애굽의 장자가 죽던 밤, 이스라엘의 장자는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린 집 안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의 왕가에서, 어머니의 발이 문지방에 닿는 그 순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을 품었던 한 아이가 숨을 거둡니다. 어머니가 온 힘을 다해 달려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변장도 소용없었고, 선지자를 찾아간 것도 소용없었고, 예물로 가져간 떡과 꿀 한 병도 소용없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문지방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성경은 여기서 조용히 선언합니다. 생명은 우리가 달려가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죽음은 단순한 가정의 비극만도 아닙니다. 13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은 무너질 집안에서 이 아이를 먼저 건져 내어 온 이스라엘의 애도 속에 묘실에 눕히셨습니다. 심판의 한복판에서 한 영혼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죽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거나 그 집안을 살려 내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아이를 넘어, 참으로 죄 없으신 한 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의 한복판에서 죽으심으로 옛 시대를 끝내시고 하나님 나라를 여신 그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비야의 죽음은 여로보암의 집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살렸습니다. 아비야는 애도를 받고 묻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열왕기상 14장 문지방에서 멈춘 인간의 달음질, 출애굽기 12장 문설주의 피, 골고다의 십자가. 성경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달음질이 아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 아픈 인물, 여로보암의 아내를 봅니다. 성경은 이 여인을 끝까지 “여로보암의 아내”라고만 부르고, 그녀의 대사를 본문 전체에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무서운 심판 선언을 다 듣고도,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도 침묵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부릅니다. 죽은 자의 특징은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뜨겁지 않고, 은혜를 받아도 오래가지 않고, 심판을 들어도 두렵지 않은 것이 영적 죽음의 증상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응하는 자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곧 우리가 아무 반응도 못 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반응이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 반응의 원인입니다.

오랜 시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아이 곁을 지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병실에 와서 성경을 읽어 주고,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손을 잡고 기도하고 돌아갔습니다. 몇 달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들리기는 하겠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들리는지 몰라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저 아이가 제 아들이라서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고, 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무반응이 하나님의 사랑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위기가 와야 겨우 하나님을 찾는 여로보암의 자리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도 얼굴을 가리는 변장한 왕비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 하나를 품고 있는 아비야의 자리입니까? 대단한 반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정도의 반응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제가 그동안 변장하고 살았습니다” 하는 한마디, “주님, 제 마음을 다시 만져 주십시오” 하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묵상 질문

1

요즘 말씀이나 은혜에 무뎌졌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습니까? 그 무반응 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찾아오시기를 원하십니까?

2

오늘 나의 자리는 여로보암의 자리, 변장한 왕비의 자리, 아비야의 자리 가운데 어디입니까?

3

이번 한 주간의 묵상 가운데 내 마음에 일어난 ‘가장 작은 반응’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문지방 앞에서 좌절한 저를 위하여 친히 죄 없으신 아들을 내어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미 저를 위해 죽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아주 작은 반응 하나라도 제 안에 일어나게 하시고, 내일 주일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 — 열왕기상 14:1-17

Day 1월요일 — 위기가 와서 흔들려 봐야 우리 신앙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드러납니다.
Day 2화요일 — 우상은 우리의 욕망을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죽음을 감당해 주지는 못합니다.
Day 3수요일 — 하나님 앞에서 변장은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꾸미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Day 4목요일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흠한 인생이 아니라 돌이키는 인생입니다.
Day 5금요일 — 하나님은 무너지는 집을 쓸어 내실 때에도 당신을 향해 돌아서 있던 한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Day 6토요일 — 생명은 달려가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고, 우리의 반응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 반응의 원인입니다.

한 주간의 기도제목

1

하나님 앞에서 모든 가면과 변장을 벗어 던지고, 정직하고 온전한 심령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2

악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고 선한 뜻을 품는 한 사람의 성도가 되게 하소서.

3

죄로 인해 무감각해진 우리의 영혼을 성령으로 만지사,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 앞에 감사와 회개로 반응하게 하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번 주 저희는 여로보암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듣지 않고 저희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묵상했습니다. 위기가 와서야 주님을 찾고, 주님 앞에 나오면서도 얼굴을 꾸미던 저희의 변장을 벗겨 주옵소서. 무너져 가던 한 집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을 품은 한 아이를 기억하셨던 것처럼 저희의 작은 진심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무엇보다 문지방 앞에서 좌절한 저희를 위하여 죄 없으신 아들을 내어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내일 선포될 말씀 앞에서 아주 작은 반응 하나라도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번 주 찬송 — 새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한 주간 암송구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