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다함교회 주간 묵상집

말씀이 사건이 되다(04)

열왕기상 13:11-32

이 묵상집은 주일 설교 「말씀이 사건이 되다(04)」를 한 주간 이어서 묵상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매일 본문을 소리 내어 읽고, 묵상 글을 읽은 뒤, 질문에 답을 적고 기도로 마무리하십시오. 하루 15~20분이면 충분합니다.

기간6일 과정 (월~토)
소요 시간매일 15~20분
준비성경책, 필기구, 조용한 장소
순서말씀 → 묵상 → 질문 → 기도
한 주간 암송구절
"이에 그가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니라" (왕상 13:10)

6일 묵상 한눈에 보기

일차본문 및 제목한 주간 묵상 되새김
Day 1 · 월다른 길로 가라 (열왕기상 13:8-10; 시편 1:1)월요일 — 신앙의 무게는 더하기가 아니라 어디에 앉지 않는가에 있다.
Day 2 · 화벧엘에 오래 살던 사람 (열왕기상 13:11-13; 요한계시록 3:15-16)화요일 — 가장 무서운 타락은 배교가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Day 3 · 수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열왕기상 13:14-19; 갈라디아서 1:8)수요일 — 이미 주신 말씀과 충돌하는 새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다.
Day 4 · 목사자가 지킨 시체 (열왕기상 13:20-25; 빌립보서 1:18)목요일 — 말씀은 전하는 사람의 자격에 매이지 않고 반드시 사건이 된다.
Day 5 · 금오호라 내 형제여 (열왕기상 13:26-32; 로마서 6:4-5)금요일 — 죽어서 어디에 눕느냐가 내가 누구 편이었는지의 최종 선언이다.
Day 6 · 토기꺼이 속아 주신 분 (열왕기상 13:33-34; 마태복음 21:1-11)토요일 — 우리는 스스로 돌이키지 못한다. 주께서 먼저 죽어 누우심으로 우리가 돌아섰다.
DAY 1월요일

다른 길로 가라

열왕기상 13:8-10; 시편 1:1 · 오늘의 말씀
"이에 그가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니라" (왕상 13:10)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하나님께서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명령은 세 가지였습니다. 떡도 먹지 말라, 물도 마시지 말라,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흥미롭게도 세 가지 모두 "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더 많은 사역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대개 더하기로 생각합니다. 예배를 더 드리고, 봉사를 더 하고, 성경을 더 읽는 것.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 신앙의 진짜 무게가 다른 곳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디에 앉지 않는가, 누구와 밥을 먹지 않는가, 어느 길로 가지 않는가.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을 묘사할 때도 맨 먼저 나오는 것은 따르지 않고, 서지 않고, 앉지 않는다는 세 개의 부정문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한 상에서 떡을 뗀다는 것은 한 가족이 된다는 언약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니 "벧엘에서 떡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곧 "우상숭배 체제와 어떤 가족 관계도 맺지 말라"는 단절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종하여 "다른 길"로 갔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왔던 길이 있습니다. 익숙한 길, 편한 길, 예전에 늘 다니던 길입니다. 그 길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오늘의 순종입니다. 다른 길은 대개 멀고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이면 그 길이 바른 길입니다.

묵상 질문

1

내가 신앙생활에서 "더하기"에만 집중하고 "빼기"를 소홀히 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2

내가 되돌아가지 말아야 할 "왔던 길"은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3

오늘 하루, 익숙한 길 대신 걸어야 할 "다른 길" 한 걸음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에게 무엇을 더 하라 하시기 전에 무엇을 그만두라 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익숙한 옛 길로 돌아가지 않게 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그 다른 길로 오늘 하루를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2화요일

벧엘에 오래 살던 사람

열왕기상 13:11-13; 요한계시록 3:15-16 · 오늘의 말씀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왕상 13:11)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벧엘은 금송아지가 서 있던 곳입니다. 아무나 제사장이 되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선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늙은" 선지자였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뜻입니다.

유다에서 온 이름 없는 젊은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제단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늙은 선지자는 수십 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불편했을 것입니다. 처음 금송아지가 세워졌을 때는 잠을 못 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그냥 풍경이 되었습니다.

영적 타락의 가장 무서운 형태는 대놓고 배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갱도에 오래 있던 광부일수록 유독가스 냄새를 못 맡습니다. 신참은 코를 막는데 고참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쓰러지는 것은 언제나 고참 쪽입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것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미지근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몇 년 전이라면 절대 못 했을 말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몇 년 전이라면 마음이 찔렸을 자리에 지금은 편안히 앉아 있지는 않은가? 오래 믿었다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래 있을수록 감각은 무뎌집니다.

묵상 질문

1

내가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진 일이 있습니까?

2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마땅히 말해야 하는데 침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3

무뎌진 영적 감각을 다시 깨우기 위해 이번 주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마비된 제 영적 감각을 다시 살려 주옵소서. 오래 익숙해진 것들 앞에서 다시 아파하게 하시고, 침묵해 온 자리에서 정직하게 말할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3수요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열왕기상 13:14-19; 갈라디아서 1:8 · 오늘의 말씀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왕상 13: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늙은 선지자는 두 가지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동류의식입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권위의 도용입니다.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고 천사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곧바로 밑줄을 긋습니다.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돈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왕의 권력에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 사람의 말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사탄의 가장 정교한 전략은 하나님을 부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왜 하필 천사를 예로 들었겠습니까? 오늘 본문과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음성이 아무리 거룩한 옷을 입고 와도, 이미 주신 말씀과 충돌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그가 넘어간 진짜 이유를 보아야 합니다. 그는 피곤했고, 상대는 선배였고, 무엇보다 그 말이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검증하지 않고 우리 욕망에 맞는지를 검증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말조차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없는 태도가 아니라 가장 신실한 태도였습니다.

묵상 질문

1

최근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 생각이 있습니까? 성경에 비추어 검증해 보셨습니까?

2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3

내가 가장 쉽게 설득당하는 통로는 무엇입니까? 사람입니까, 권위입니까, 피곤함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에게 말씀의 저울을 주옵소서. 성경 위에 어떤 음성도 두지 않게 하시고, 제 마음에 드는 말을 하나님의 뜻이라 부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4목요일

사자가 지킨 시체

열왕기상 13:20-25; 빌립보서 1:18 · 오늘의 말씀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왕상 13:24)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빌 1:18)

식탁에 앉았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임했습니까? 속인 사람, 곧 늙은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자기가 거짓말로 데려온 사람에게 자기 입으로 심판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밥상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는 사람의 자격에 매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설교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옥중에서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두고 말했습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니 나는 기뻐한다고.

그리고 길에서 사자가 그를 만나 죽입니다. 그런데 사자는 시체를 먹지 않았고, 나귀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셋이 그 길 위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자연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집행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조차 질서 있게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광경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벧엘에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이 목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사건이 됩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말씀의 권위를 전하는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재고 있지는 않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오늘 내 삶에 어떤 무게로 다가옵니까?

3

내가 "우연한 사고"라고 불렀던 일 가운데 다시 읽어야 할 사건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주의 말씀이 사람의 형편에 매이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5금요일

오호라 내 형제여

열왕기상 13:26-32; 로마서 6:4-5 · 오늘의 말씀
"나를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왕상 13:31)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4-5)

늙은 선지자가 시체를 거두어 자기 묘실에 두고 통곡합니다. "오호라 내 형제여." 자기가 속여서 죽게 한 사람 앞에서 그는 형제라고 부르며 웁니다.

그리고 유언합니다.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고. 죽어서 어디에 눕느냐는 내가 누구 편이었는지의 최종 선언입니다. 벧엘에서 수십 년 침묵하며 살았던 그가 마침내 자기 노선을 바꾼 것입니다. "나는 벧엘 사람으로 죽지 않겠다."

그리고 32절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입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증언합니다. 평생 침묵하던 사람이 마침내 증인이 되었습니다.

삼백 년 뒤 요시야 왕이 벧엘 무덤들을 파헤쳐 뼈를 불사를 때, 그는 한 무덤 앞에서 멈추고 "그대로 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뼈와, 그 곁에 누운 늙은 선지자의 뼈가 함께 보존되었습니다. 거짓말쟁이가 하나님의 사람 곁에 누웠다는 이유 하나로 심판의 불을 면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그림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심판을 면합니다.

묵상 질문

1

내 인생의 노선을 바꾸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습니까?

2

나는 누구 곁에 묻히기를 원합니까? 내 삶의 최종 소속은 어디입니까?

3

평생 침묵하던 사람도 증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부터 증언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늙은 선지자의 마지막 고백을 제 고백으로 삼습니다. 제 뼈를 그리스도의 뼈 곁에 두옵소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묻히고 주와 함께 살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6토요일

기꺼이 속아 주신 분

열왕기상 13:33-34; 마태복음 21:1-11 · 오늘의 말씀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왕상 13:33)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마 21:5)

이야기의 끝에 여로보암이 다시 등장합니다. 손이 마르는 심판을 겪고 그 손이 회복되는 자비를 맛보았는데도, 그는 다시 산당을 짓고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인간은 은혜를 받아도 스스로 돌이키지 못합니다. 기적을 보아도 안 됩니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는 돌이켰습니다. 무엇이 그를 돌이키게 했습니까?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 식탁에서 심판의 말씀을 자기 입으로 선포하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죽어서 자기 앞에 누웠을 때 비로소 통곡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을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리석게 속은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기꺼이 속아 준 것입니다. 그가 죽었기에 한 사람이 돌아섰고, 그의 무덤이 다른 이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누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까? 누가 성전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셨습니까? 누가 거짓 증언 앞에서 침묵하셨습니까? 누가 성문 밖 길에서 죽으셨습니까? 그리고 누구의 무덤이 우리의 무덤이 되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내일 우리는 그분 앞에 예배하러 나아갑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은혜를 받고도 돌이키지 못한 자리가 있습니까?

2

이번 한 주간의 묵상을 통해 내가 걷기로 결단한 "다른 길"은 무엇입니까?

3

내일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기 원합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스스로 돌이킬 힘이 없는 자입니다. 주께서 저를 위해 기꺼이 정죄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저를 돌이켜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붙들고 내일 주의 전에 나아가게 하시고, 이번 주에 결단한 그 길을 끝까지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말씀이 사건이 되다(04)" — 열왕기상 13:11-32

Day 1월요일 — 신앙의 무게는 더하기가 아니라 어디에 앉지 않는가에 있다.
Day 2화요일 — 가장 무서운 타락은 배교가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Day 3수요일 — 이미 주신 말씀과 충돌하는 새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다.
Day 4목요일 — 말씀은 전하는 사람의 자격에 매이지 않고 반드시 사건이 된다.
Day 5금요일 — 죽어서 어디에 눕느냐가 내가 누구 편이었는지의 최종 선언이다.
Day 6토요일 — 우리는 스스로 돌이키지 못한다. 주께서 먼저 죽어 누우심으로 우리가 돌아섰다.

한 주간의 기도제목

1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 익숙한 옛 길을 끊고 주께서 말씀하신 다른 길을 걷게 하옵소서.

2

무뎌진 영적 감각을 깨우소서 — 오래 익숙해진 죄 앞에서 다시 아파하고 침묵한 자리에서 말하게 하옵소서.

3

말씀의 저울을 주소서 — 거룩한 옷을 입은 거짓 음성을 분별하고 오직 성경 위에 서게 하옵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이번 주 저희는 "길"을 묵상했습니다. 주께서는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 하셨으나, 하나님의 이름을 빌린 목소리 하나에 한 사람이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한 사람을 돌이켰고 그의 무덤이 삼백 년 뒤 심판의 불에서 다른 이를 지켜 주었으니, 이는 저희를 위하여 기꺼이 정죄받으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저희는 스스로 돌이키지 못하오니, 주께서 저희 앞에 죽어 누우심으로 저희를 돌이켜 주옵소서. 내일 선포될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이번 주에 결단한 그 다른 길을 끝까지 걷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번 주 찬송 — 새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한 주간 암송구절
"이에 그가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니라" (왕상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