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자리, 세속의 계산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을 두고 북쪽 세겜까지 올라갑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고, 야곱이 이방 신상을 묻은 곳이며, 무엇보다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앞에서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외쳤던 언약 갱신의 땅입니다.
그러니 이 걸음은 신앙의 걸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세겜에서 하나님께 물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장소가 주는 정통성을 빌리고 싶었을 뿐, 그 장소가 요구하는 결단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장소는 빌릴 수 있어도 정신은 빌릴 수 없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은 즉위하며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아들은 같은 자리에서 여론을 구했습니다. 한 세대 만에 기도의 자리가 회의실로 바뀐 것입니다. 신앙의 퇴락은 큰 배교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묻는 대상이 조용히 바뀌는 데서 시작됩니다.
세겜에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사사기 9장에서 아비멜렉이 바로 이 세겜에서 왕이 되었다가 형제들의 피 위에 세운 왕권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같은 땅이 언약의 자리도 되고 반역의 자리도 됩니다. 땅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훗날 주님은 이 세겜 인근에서 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고.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묵상 질문
나는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무엇을 계산하고 있습니까?
최근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먼저 물었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거룩한 자리의 정통성만 빌리고 그 자리가 요구하는 결단은 피했던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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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세속의 방식으로 결정해 온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제 앞에 놓인 일들 앞에서 사람보다 주님께 먼저 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무리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애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를 무대 위로 올린 것은 그의 야심이 아니라 백성들의 소환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달려왔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를 불렀다고 적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조용하고 정교한지 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다니지 않으십니다. 역사의 물결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시면서, 이미 아히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자리로 사람을 옮기십니다. 잠언은 왕의 마음조차 여호와의 손안에서 봇물처럼 흐른다고 말합니다.
내 인생에도 내가 계획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서 있게 된 자리가 있습니다. 원치 않았던 부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의 만남, 계획에 없던 질병이나 이사. 그때 우리는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 뒤에서 말씀을 이루고 계신 손을 보라고 말합니다.
한 사건에 두 개의 층이 있습니다. 3절은 "무리가 사람을 보내어 불렀다"고 적고, 15절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적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층과 하나님이 일하시는 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도 똑같이 두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층만 보면 우연이지만, 아래층까지 보면 섭리입니다.
묵상 질문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지금 서 있게 된 자리가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루고 계신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최근 "우연"이라 불렀던 일 가운데 다시 읽어야 할 사건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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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저를 이 자리에 두셨음을 믿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오늘 하루 속에서도 주의 손을 보게 하시고, 제게 맡기신 자리에서 신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솔로몬의 금빛 영광 뒤에는 등이 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전과 왕궁과 병거성이 세워지는 동안 누군가는 레바논으로 징집되었고 누군가는 돌을 날랐습니다. 열왕기상 5장은 삼만 명의 역군과 그 감독관 아도니람의 이름을 적어 둡니다. 그 이름은 열왕기상 12장 18절에서 다시 나오는데, 그는 성난 백성이 던진 돌에 맞아 죽습니다. 화려한 통계 뒤에 가려진 신음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도 같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대려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짐을 지우는 자리에 서 본 사람은 그 짐의 무게를 모릅니다. 무게는 지는 사람만 압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지금 어떤 멍에에 눌려 있습니까? 둘째, 나의 성취 뒤에서 대신 멍에를 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가정에서, 일터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누군가의 헌신은 종종 다른 누군가의 소리 없는 노역 위에 서 있습니다.
묵상 질문
지금 내 어깨에 얹힌 가장 무거운 멍에는 무엇입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지우고 있는 멍에는 없습니까? 이번 주에 덜어 줄 수 있는 짐 하나는 무엇입니까?
내 편안함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한 사람 떠올린다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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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제 신음을 들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동시에 제 편안함 뒤에서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한 사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두 개의 조언, 하나의 뿌리
원로들의 조언은 훌륭해 보입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 그러나 그 이유를 보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목적은 백성이 아니라 정권이었습니다. 오늘 한 걸음 물러서서 내일 열 걸음을 얻자는 계산입니다.
소년배들의 조언은 노골적입니다. 전갈 채찍은 끝에 쇳조각을 박아 살을 찢는 채찍입니다. 통치의 언어가 아니라 폭력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 두 조언은 정말 다릅니까? 하나는 부드럽고 하나는 거칠지만, 둘 다 "어떻게 왕권을 지킬 것인가"만 묻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고민하는 두 선택지가,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게다가 르호보암에게는 사흘이 있었습니다(5절). 그 사흘을 그는 두 번의 회의로 다 썼습니다. 여론을 두 번 물었고 하나님께는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순서가 없어서 무너진 것입니다. 잠언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선택지를 놓고 고르기 전에, 그 선택지를 만든 나의 전제부터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묵상 질문
내가 지금 고민하는 두 가지 선택지는 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나는 조언을 구할 때 지혜를 구합니까, 아니면 듣고 싶은 말을 해 줄 사람을 찾습니까?
내게 주어진 '사흘'을 나는 무엇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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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 저는 종종 기도한다고 하면서 이미 정한 제 결정에 주님의 서명을 요구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 선택지 자체를 주님 앞에 다시 내려놓게 하시고, 주의 말씀으로 판을 새로 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한 절이 12장 전체의 열쇠입니다. 겉면은 정치이고 회의실이고 인간의 오만인데, 이면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르호보암은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교만은 온전히 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교만이 흘러가게 하심으로 이미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온전한 책임을 모순으로 보지 않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 그대로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이 두 겹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니와,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다고.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책임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분열이 이미 사무엘상 8장에서 예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사무엘은 그날에 너희가 부르짖으리라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세겜에서 들리는 부르짖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내 종 다윗을 위하여" 한 지파를 남기셨고, 그 남겨진 계보를 따라 베들레헴에서 참된 왕이 오셨습니다.
묵상 질문
내 삶에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국면을 15 절의 눈으로 다시 본다면 어떻게 달라집니까?
지금 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남겨 두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 나의 책임을 가볍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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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권자이신 하나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주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사람의 결정에 흔들리는 제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심판 중에도 언약을 지키시는 주의 자비를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세상의 왕은 "더 무겁게 하리라"고 했지만, 참된 왕은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멍에를 없애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멍에 없는 삶이 아니라, 멍에를 바꿔 메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가 가벼운 이유는 셋입니다. 그 멍에를 지우신 분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이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그것을 메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져야 할 가장 무거운 짐인 죄와 심판을 이미 십자가에서 다 지셨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은 채찍을 들었으나, 우리 왕은 그 채찍을 대신 맞으셨습니다.
본래 멍에는 두 마리가 함께 메는 것입니다. 어린 소는 늙은 소 곁에 매여 밭고랑을 배웁니다. 혼자 끄는 멍에가 아니라 함께 끄는 멍에이기에 가볍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를 바꿔 메는 일은 곧 스승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제 한 주간을 마무리하며 로마서 12장 2절을 붙드십시오. 여기서 "분별하다"는 금속을 불에 넣어 진짜인지 시험하는 단어이고, 그 앞에는 반드시 "마음을 새롭게 함"이 나옵니다.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분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배운 것은 결국 질문의 전환입니다. "이게 나한테 뭐가 남지"에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로. 그 질문 하나가 바뀔 때, 세겜의 사람이 갈보리의 사람이 됩니다.
묵상 질문
이번 한 주간 내 질문은 실제로 바뀌었습니까? 어떤 순간에 그러했습니까?
다음 한 주간,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기 위해 내가 붙들 구체적인 습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내일 예배 앞에 내려놓아야 할 나의 계산기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참된 왕이신 예수님, 저를 위하여 채찍을 대신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왕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계산기를 내려놓고 주의 멍에를 메겠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배우게 하시고, 제 영혼이 참된 쉼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정리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말씀이 사건이 되다(02)" — 열왕기상 12:1-11
| Day 1 | 월요일 — 장소는 빌릴 수 있어도 정신은 빌릴 수 없다. | |
| Day 2 | 화요일 — 한 사건에는 두 층이 있다. 위층은 우연, 아래층은 섭리다. | |
| Day 3 | 수요일 — 멍에의 무게는 지는 사람만 안다. | |
| Day 4 | 목요일 — 두 선택지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물으라. | |
| Day 5 | 금요일 —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온전한 책임은 모순이 아니다. | |
| Day 6 | 토요일 — 신앙은 멍에 없는 삶이 아니라 멍에를 바꿔 메는 삶이다. |
한 주간의 기도제목
묻는 순서의 회복 — 사람에게 묻기 전에 주님께 먼저 묻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짐을 덜어 주는 공동체 — 다함교회가 누군가의 소리 없는 노역 위에 서지 않게 하옵소서.
질문의 전환 — 무엇이 내게 남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묻게 하옵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한 주간 말씀 앞에서 제 계산과 제 순서를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자리에 앉아 세속의 방식으로 결정해 온 저를 용서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사 주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내일 선포될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고 주의 멍에를 메는 예배자로 서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 주 본문 — 열왕기상 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