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교회 셀예배 교안 · 인도자용

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

열왕기상 14:1-17

다함교회 | 열왕기상 강해 18 | 진행 시간 약 70분

인도자 준비 안내

이번 과의 열쇠는 ‘위기의 방향’과 ‘변장’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반응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따라가며 나누어 주십시오.

핵심 메시지 : 하나님은 무너지는 자리에서도 한 사람을 기억하시며, 반응하지 못하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인도자는 모임 전에 본문(열왕기상 14:1-17)을 세 번 정독하고, 나눔 질문을 미리 표시해 두십시오.

이 본문을 “그러니까 변장을 벗고 정직하게 살자”는 교훈으로 끝내면 율법적 부담만 남습니다. 반드시 마지막에 복음의 자리, 곧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까지 데려가 주십시오.

“왜 하필 그 아이가 죽어야 했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12-13절에서 하나님이 이 아이를 여로보암 왕조의 참혹한 최후에서 건져 내어 온 이스라엘의 애도 속에 묘실에 눕히셨다는 점을 짚어 주십시오.

나눔이 특정 인물을 겨냥한 비판으로 흐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주십시오. 변장한 왕비는 “저 사람”이 아니라 “나”입니다.

준비물 — 성경, 필기구.

셀예배 순서

1. 여는 기도 — 인도자 (3분)
2. 마음 열기 (10분)
3. 본문 읽기 (10분)
4. 본문 해설 — 인도자 낭독 (12분)
5. 나눔 질문 (25분)
6. 삶의 적용 (10분)
7. 중보기도 제목
8. 마무리 기도 — 인도자
9. 함께 부를 찬송

1. 여는 기도 (인도자, 3분)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저희를 이 자리에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일에 들은 말씀이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삶으로 스며들게 하옵소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꺼내 놓을 수 있는 안전한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마음 열기 (10분)

아래 두 질문을 돌아가며 짧게 나눕니다.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시간입니다.

① 살면서 “큰일 났다” 싶었던 순간,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왜 그 사람이었을까요?

② 나도 모르게 남 앞에서 “괜찮은 척”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 인도자 팁 : 이 두 질문이 오늘 본문의 두 축(위기의 방향, 변장)과 연결됩니다. 가볍게 웃으며 시작하되, 답을 교정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 주십시오.

3. 본문 읽기 (10분)

열왕기상 14장 1-17절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습니다. 읽은 후 각자 마음에 남는 한 절에 밑줄을 긋고, 왜 그 절이 걸렸는지 한 문장으로 나눕니다.

■ 본문의 흐름 한눈에 보기

① 1-3절 : 아비야가 병들자 여로보암이 아내를 변장시켜 실로의 아히야에게 보냄

② 4-6절 : 눈이 어두운 아히야가 하나님의 알려 주심으로 그녀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물음

③ 7-11절 : 은혜의 회상으로 시작해, 다윗과의 대조를 거쳐 여로보암 집의 멸망 선언

④ 12-13절 :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장사됨 —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이 있었기 때문

⑤ 17절 : 어머니가 디르사로 돌아가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음

4. 본문 해설 (인도자 낭독, 12분)

■ 설교 서두 — 흔들려 봐야 무엇이 실렸는지 압니다

배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아는 방법은 큰 파도가 한 번 치게 하는 것입니다.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큰 파도가 치면 짐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그 배가 싣고 다닌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아서, 평온할 때의 신앙고백은 큰 의미가 없고 인생이 흔들릴 때 우리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과 우리 발이 향하는 방향이 우리 신앙의 실체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이 인생 최악의 파도, 곧 아들의 병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묻습니다. 첫째, 나는 위기의 순간에 어디로 가는 사람인가? 둘째, 하나님은 반응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1) 변장한 왕비 — 위기가 벗겨 낸 신앙의 실체 (1-6절)

아이의 이름 아비야는 히브리어로 ‘아비야후’, 곧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입니다. 여로보암이 아직 본격적인 우상숭배로 넘어가기 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던 시절에 지은 이름으로, 여로보암이 한때 서 있던 자리를 증언하는 비석 같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금송아지를 세운 여로보암은 아들이 병들자 자기가 세운 벧엘로 가지 않고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내를 보냅니다. 자기가 세운 신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자기가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평상시 우리의 욕망을 정당화해 주는 데는 유능하지만 생사가 걸린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합니다. 여로보암은 벧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이용한 것이고, 이용한 것과 믿은 것은 위기 앞에서 반드시 갈라집니다.

아내를 변장시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치적 이유로, 왕비가 옛 성소 실로의 선지자를 찾아갔다는 소문이 나면 자기가 세운 종교 체제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관계의 문제로, 새 옷 열두 조각으로 열 지파를 약속했던 아히야를 볼 낯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아히야는 하나님이 미리 알려 주셨기에 발소리만 듣고도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하고 부릅니다. 아히야는 육신의 눈은 어두워도 하나님과 교통하기에 다 보고, 여로보암은 두 눈이 멀쩡해도 하나님과 끊어져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장은 문지방을 넘는 순간까지만 유지됩니다. 어느 노 목사님은 “심방을 가면 거실이 아니라 현관 신발장을 보면 그 집이 어떻게 사는지 다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첫걸음은 잘 꾸미는 것이 아니라 꾸미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2) 거름 더미처럼 — 준엄한 심판, 그 속의 한 줄기 자비 (7-13절)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회상, 곧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다윗과 비교하십니다. 다윗도 큰 죄를 지었지만 죄를 지었을 때 돌이켰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흠한 인생이 아니라 돌이키는 인생이며,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의 차이는 죄의 유무가 아니라 회개의 유무입니다. 10절은 여로보암의 집을 거름 더미를 쓸어 내듯 말갛게 쓸어 버리겠다고 하는데, 여로보암의 죄가 개인의 죄로 끝나지 않고 한 나라 전체를 우상으로 끌고 들어가는 구조의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죄는 사적이지 않고 공적이며 세대를 넘어 흐릅니다.

그런데 이 준엄한 선언 한복판에 13절이 있습니다. 한 집안 전체가 쓸려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은 이 아이 하나만 묘실에 들어가게 하시는데, 그 이유는 이 아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위대한 일이나 개혁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은 우상 천지인 궁궐 안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소년의 마음 한 조각까지 기억하십니다. 12절의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도 저주처럼 들리지만, 이 아이는 앞으로 닥칠 왕조의 참혹한 최후를 보지 않고 온 이스라엘의 애도를 받으며 묘실에 장사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때로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오지 않지만, 자비는 자비입니다.

(3) 문지방 — 구원은 대속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17절)

성경은 아이가 죽은 장소를 굳이 “문지방”이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어로 문지방은 ‘사프’인데, 유월절 밤 어린 양의 피를 담았던 ‘그릇’(출 12:22)도 같은 모양의 단어 ‘사프’입니다. 애굽의 장자가 죽던 밤

이스라엘의 장자는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린 집 안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발이 문지방에 닿는 순간 아이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변장도, 선지자를 찾아간 것도, 예물로 가져간 떡과 꿀 한 병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명은 우리가 달려가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거나 그 집안을 살려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넘어 죄 없으신 한 분, 죄인들의 한복판에서 죽으심으로 옛 시대를 끝내시고 하나님 나라를 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아비야의 죽음은 여로보암의 집을 살리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살렸고, 아비야는 애도를 받고 묻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열왕기상 14장 문지방에서 멈춘 인간의 달음질, 출애굽기 12장 문설주의 피, 골고다의 십자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달음질이 아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4) 반응 없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

성경은 이 여인을 끝까지 “여로보암의 아내”라고만 부르고, 그녀의 대사를 본문 전체에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심판을 듣고도,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도 침묵합니다. 이 무반응이 곧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우리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뜨겁지 않고, 은혜를 받아도 오래가지 않고, 심판을 들어도 두렵지 않은 것이 영적 죽음의 증상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곧 아무 반응도 못 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반응이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 반응의 원인입니다.

오랜 시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아이 곁을 매일 지키며 성경을 읽어 주고 기도하던 아버지는 “들리는지 몰라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저 아이가 제 아들이라서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뒤 아이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을 때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울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무반응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말씀과 예배와 성도의 교제로 우리 안에서 아주 작은 반응 하나가 일어날 때까지 두드리십니다.

5. 나눔 질문 (25분)

※ 모두 다루려 하지 마시고 셀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십시오.

① 여로보암은 벧엘을 세워 놓고도 위기에는 실로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내 삶에서 ‘평소의 의지처’와 ‘위기의 의지처’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② 하나님 앞에서 ‘변장’하게 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게 될까요?

③ 하나님은 다윗을 기준 삼으셨습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최근 내가 ‘돌이킨’ 경험, 혹은 돌이켜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④ 아비야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지키고 있는 신앙의 자리, 작은 순종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⑤ 요즘 말씀이나 은혜에 무뎌졌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습니까? 그 무반응 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찾아오시기를 원하십니까?

⑥ 오늘 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위기가 와야 겨우 하나님을 찾는 여로보암의 자리,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변장한 왕비의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 하나를 품은 아비야의 자리 가운데 어디에 가깝습니까?

※ 인도자 팁 : ⑤와 ⑥은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③④ 중 하나를 생략하더라도 ⑤⑥은 반드시 다루십시오. 나눔 후에는 반드시 해석이나 조언 대신 “그 마음 나눠 줘서 고맙다”는 수용의 말로 받아 주십시오.

6. 삶의 적용 (10분)

아래 세 가지 중 이번 주에 실제로 실천할 한 가지를 선택하고, 셀원들 앞에서 소리 내어 선언합니다. 다음 모임에서 서로 확인합니다.

① 정직 : 이번 주 기도 시간에 꾸미지 않은 한 문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예: “주님, 제가 그동안 변장하고 살았습니다”).

② 우선순위 : 문제가 생겼을 때 세상의 문을 먼저 두드리지 않고, 가장 먼저 주님께 나아가 5분 기도하고 성경 한 장 읽기.

③ 작은 반응 : 대단한 반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정도의 반응으로 “주님, 제 마음을 다시 만져 주십시오” 한 문장을 매일 드리기.

7. 중보기도 제목

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가면과 변장을 벗어 던지고, 정직하고 온전한 심령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② 악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고 선한 뜻을 품는 한 사람의 성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에 예배가 회복되며 자녀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이 자라나게 하소서.

③ 죄로 인해 무감각해진 영혼을 성령으로 만지사, 하나님의 성실한 사랑 앞에 감사와 회개로 반응하게 하소서.

8. 마무리 기도 (인도자)

성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의 민낯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도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의 아내처럼 아무 반응 없이 살아온 시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변장을 벗겨 주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옵소서.

무너지는 집안에서도 한 아이의 선한 뜻을 기억하신 주님, 저희 각 사람의 작은 진심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문제가 생길 때 세상의 문을 먼저 두드리지 않게 하시고 가장 먼저 주님께 나아가는 습관을 주옵소서. 저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저희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의지하여, 이번 주 저희 삶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나눈 결단을 붙들어 주시고, 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과 일터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9. 함께 부를 찬송

새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또는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